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 (문단 편집) == 표종욱 일병 실종사건 == >TV를 보고 오늘(11월 6일) 아침까지도 헌병이 전화해서 종욱이한테 무슨 소식온 거 없냐(고 하니, 우리는 북한군이 표종욱 일병을 살해했다는 것을 확인한) 뉴스도 안 듣냐, 테레비 안 봤냐 그랬더니 (헌병대가) '''뉴스하고 테레비가 장땡이냐'''. >---- >- 표종욱 일병의 누나 표시연.[* 표종욱 일병은 형제관계로 위에 누나만 두 명 있다. 이 중 큰 누나다.]([[https://imnews.imbc.com/replay/1996/nwdesk/article/2006614_30711.html|출처 뉴스]]) 이 작전에서 국방부는 전 국민의 분노와 미움을 샀는데 그 이유는 전사자 중 한 명인 '''표종욱 일병'''에 대한 한심한 대응 때문이다. 국문학과 출신이던 표종욱 일병은 당시 2사단 [[공병]]부대 소속이었는데, 10월 22일 숙영을 위해 싸리나무를 모으던 도중 하필이면 도주하던 북한군 침투병들과 마주친다. 북한군은 한국군으로 위장하기 위해 표종욱 일병을 습격해서 고문 뒤에 살해했고, 표종욱 일병의 시신은 근처에 숨겨졌다. 그런데 군대는 표종욱 일병이 사라지자 제대로 된 주변 수색 없이 평소 여자관계가 안 좋았다며 애정 문제에 따른 '''탈영'''으로 처리하였다. 이유는 소지품에서 연애 편지가 발견되었다는 게 근거였다. 그리고 2사단 헌병대 군탈체포조는 '''표 일병의 집에 가서 "아들 숨겨놓은 거 알고 있으니 빨리 내놓으라"며 행패를 부렸다'''. 부모가 아들의 '탈영' 소식을 듣고 다음날 새벽같이 부대를 찾아가 자초지종을 들었을 때, 여자 문제도 없었고(9월 초 휴가를 받아 집에 왔을 때 여자친구가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집안도 화목해 탈영할 이유가 없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알빠노|부대장은 들으려 하지 않았다고 한다]]. 부모는 분명히 사고라는 생각에 직장도 팽개친 채 10월 24일과 25일 부대가 있는 양구읍을 찾아가 표 일병의 큰아버지, 숙모, 고모와 함께 이곳저곳을 찾아 헤맸지만 헛수고였다.[* 가족들이 수색 전문가도 아니고, 민간인이라 들어가기 어려운 구역이었기에 찾지 못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https://www.google.com/am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1996/11/06/1996110670266.html%3foutputType=amp|"탈영누명 너무 억울하다" 분통(조선일보)]] 그렇게 국방부가 표 일병 가족을 상대로 2주일 가까이 개뻘짓을 벌이던 중인 11월 5일 도주하던 북한군이 사살되었는데, 그 사살된 북한군이 표 일병을 공격했던 그 북한군이었고 표종욱 일병의 군복(야전점퍼와 상의)과 인식표 등[* 인식표(군번표)2개 외 군인수첩, [[군인복무규율]], 국군병영생활규정 등 수첩 3개.]을 착용하고 있었다. 거기에 지금까지 전투 내용을 기록한 노트를 국군이 발견했고,[* 남파 무장공비들은 이런 식으로 자신들의 행적을 꼼꼼히 기록, 상부에 자신들의 활동을 증거하는 한편 후배들의 참고자료로 사용한다. 군에서 차단작전 훈련할 때 "공비들은 옛날에 지나갔던 길로 다시 온다"는 말은 빈 말이 아닌 셈이다.] 한국군은 발견한 노트에서 한국군 작전내역에 기록되지 않은 아군 전사자를 확인했다. 거기에 적군의 유류품에서 표 일병의 시계를 확인했고 표 일병의 유가족들도 TV에서 그것을 보게 된다. 그제서야 군은 뒤늦게 수첩의 기록을 토대로 수색작업을 개시하였고, 단 하루만인 11월 6일에 숨겨져있던 표 일병의 시신을 찾아낼 수 있었다. 표 일병의 시신은 작업하던 곳에서 '''불과 50m''' 떨어진 곳 낙엽더미 속에서 팬티만 입은 채(위장하려고 그의 전투복을 빼앗아 입었으니까)로 발견되었다.[* 국군의 배치 상황을 알아내기 위해 잔인한 고문을 가한 흔적이 역력했다고 한다.] 어처구니 없는 사실은 '''수첩으로 표 일병의 살해를 분명 확인'''했고 심지어 '''표 일병이 전사자로 공식 인정되고 TV에 그 사실이 방송된 지도 하루가 지난''' 와중에도 헌병대는 가족에게 아들이 탈영했다고 전화하는, 제정신이 박혀있는지 의심스러운 짓까지 실시간으로 하고 있었다. 일선에까지 미처 정보전달이 안 되어 그랬다고 쳐도, 유가족에게 저런 엄청난 실례를 저질러놓고 사과는커녕 적반하장으로 큰소리쳤다는 것이 기가 막히다. 애당초 표 일병 실종 직후 1개 소대, 아니 1개 분대만 투입해서 제대로 수색만 했어도 발견이 가능했을 것이다. 가족들이 그를 찾아헤매고 있을 때 정작 부대는 표 일병 수색작업에서 손뗀 지 오래였다. 상식적으로 '''적군과 전투를 벌이는 상황에 병사가 안 보이면 혹시 적의 공격에 당한 것이 아닐까 예상을 한 번쯤은 해야''' 정상인데, 아니 그 이전에 준 전시 상황에서 병사를 혼자만 제대로 된 무장도 없이 보내서는 안 되었는데, 작업이 필요해서 하더라도 병력을 보내서 경계 및 경호를 진행하면서 했어야 했는데... 그런 건 아무것도 없이 '병사가 사라졌다 = 탈영'이라고 바로 보고하는 추태를 벌인 것이다.[* 이러한 추태를 벌인 이유 중 하나는, 작전이 한창이던 9월 22일에 실제로 병사 한명이 무장탈영을 하는 바람에 수뇌부들이 민감해진 상태였기 때문이다. 거기다가 작전은 필요 이상으로 장기화되었고, 그 와중에 병사 한명이 영외에서 사라진 것에 스트레스가 폭발, 탈영으로 단정짓고 내리갈굼을 벌인 것이다.] 거기에 병사 개인에 대한 예우는 둘째치고 이런 수색작전에서 적군과의 교전이나 전사자의 발생 파악은 적군의 이동경로를 파악하는 매우 중요한 정보인데 전사자 파악도 제대로 못한 부분은 수색작전마저도 헛점이 많았음을 증명한다 이후 군은 유가족들에게 그야말로 무릎을 꿇은 채 싹싹 빌어야 했고, 그와 별개로 당연히 여론의 무차별 폭격을 받았으며 대통령과 [[http://mnews.imaeil.com/PoliticsAll/1996110914510454558|국회도 이를 추궁했다]]. 해당 공비가 수첩과 함께 북으로 탈출하는데 성공하고, 시신도 아주 철저히 은닉했다면 언젠가 발견될 때까지(끝끝내 발견되지 않았다면 '''영원히''') 표 일병은 쭉 작전 중 탈영자 취급이었을 테고, 유가족들 역시 그러한 불명예를 함께 감당해야 했을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작전 중 사망한 경우와 탈영의 예우 차이는 말할 필요가 없으니까.] 유가족들 본인도 이런 말을 했다. >정말 우리 종욱이가 끝까지 이 사실이 밝혀지지 않았더라면 나는 평생 자식을 탈영 엄마라는 거와 우리 종욱이는 탈영병이라는 거 가슴에 안고 내가 죽을 건데 얼마나 기가 막히겠어요. >---- >표 일병 어머니([[https://news.kbs.co.kr/mobile/news/view.do?ncd=3767634|출처 뉴스]]) 그러나 표 일병의 유가족은 [[대인배|헌병대의 책임을 묻지 말아달라고 했다고 한다]]. 표종욱 일병의 가족관계는 부모와 누나 2명이 있는 고명아들이었고 이 사건으로 인해 표종욱 일병이 사망하여 그 집안은 남계(男系) 후손이 단절되었다. 사실 이때 한참 대간첩 작전이 진행 중인 상황이라, 상부에서는 분명히 상황이 종료될 때까지는 싸리비 제작 작업을 자제하라고 하였다. 그러나 당시 전방 부대들은 겨울 폭설에 대비한 제설 장비 보급이 되지 않았기에 늦가을 무렵엔 싸리나무 가지를 모아 싸리비를 제작하는 것이 필수 작업 중 하나였다... 상부 지시가 이를 금하는데 예하 부대들이 어길리가 없다고 여긴 헌병대가 그 난리를 피웠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군에서 만든 당시 기록영화에도 싸리비 작업을 하다 사망하는 것으로 확실하게 등장한다.] 애초에 공비가 숨어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는 산에 병사를 달랑 혼자 보낸 것 자체가 문제였던 것. 이 사건 이후에 싸리비를 대체할 목적으로 야전부대에 플라스틱 대빗자루가 대대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했으며, 2010년대 이후의 야전부대엔 싸리비 작업이 사라졌다. 그러나 이런 안이한 마인드는 21세기 들어서도 전혀 고쳐지지 않았다. 2015년 1월 16일 육군 [[제31보병사단|31사단]] 소속 A(당시 22) 일병이 K2 소총과 공포탄 몇 발을 가지고 무장탈영 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23일 부대 근처 해안가에서 주검으로 발견된 사건이 발생했는데, 알고보니 근무 중 추락 사고를 당해 [[익사]]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결론이 났다. 국방부의 미친 삽질이 또 애꿎은 병사를 탈영병으로 만드는 일이 또 벌어졌던 것이다. [[http://economy.hankooki.com/lpage/society/201501/e2015012316305293760|#]] 이 경우는 같이 근무하던 군인이 잠을 자던 도중 발생한 사고[* 웹툰이나 드라마 등에서 자주 보이는 "나 좀 잘 테니까 좀 있다가 깨워라"]로 잠자던 군인이 처벌받을까봐 두려워 탈영한 것 같다고 보고했을 가능성이 높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